💜 빼꼼

혹시나 소음이 될까 행사가 시작되고 문을 닫아두었더니 못 들어오시고 한참을 머물러 계신 분들이 많았어요. 엄지 척!하고 지나가신 분들, 부슬비에도 한참을 서성거리시던 분들. 공간, 폭우가 쏟아지던 날씨, 평일 저녁이라는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시간을 내어주신 분들께 한국의 정과 진심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늘 하루를 몇배로 부지런히 살아냈을 양육자의 시간들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바리바리 싸들고 간 율립의 비건 립스틱과 리솔츠의 입욕제를 소개하면서 제품력에 원천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엄마 립스틱을 바르며 노는 딸아이를 위해 만든 율립을 비롯해, 극심한 생리통을 완화하기 시작한 반신욕에서 '천연' 성분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걸 알고 천연소금으로 시작한 리솔츠의 이야기 모두 엄마의 마음으로 돌보고 지키는 한 개인의 서사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숨겨진 잠재력을 발굴해 나가는 여정에 더 많은 브랜드와 사람이 발견되기를 바라며 다가 올 6월 '프로젝트 히든 포텐셜 서울' 소식도 전할게요💜

💜오늘의 감정 구슬을 기록합니다

포포포 레터의 코어인 에디터님들의 글을 그동안 여러 플랫폼을 옴겨 다니며 전전했습니다. 온라인이어도 온전한 에디터님의 방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 포포포의 텍스트룸 히든포텐셜을 마련했어요. 호스팅 사이트가 아닌 웹을 구축하는 건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또 많이 배웠습니다. 네이버나 브런치처럼 잘 갖춰진 툴에 익숙하실 텐데 불편한 점도 많으실 거예요. 그렇지만 에디터님들의 글이 링크로 연동된 새로운 공간에 "이게 뭐지?" 궁금하실 포텐님들을 위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텍스트룸이라는 사실을. 나아가 타인의 시선에 갇혀 정작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기록하고 돌보는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 

무엇이든 꾸준한 것만큼 어려운 게 없죠. 매일의 감정을 기록만 해도 30개가 모이면 스페셜 구슬이 쨔라란 등장합니다. 10개의 컬러 감정 구슬을 하나씩 모으다 보면 분주한 일상에 갇혀 외면했던 마음의 빛깔이 두둥하고 등장할 거예요. 예를 들어 공허를 나타내는 검정 구슬이 가득하다? 나를 위해 삼겹살 혹은 케익 한 조각이라도 선물해야 한다!는 위급 신호로 바로 인지하고 '골든 타임'을 사수하길 바라면서요.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으로 오픈했지만 여전히 구멍들은 여기저기 많이 보입니다만(피드백 언제나 대환영!) 내 안을 투영하는 감정의 기록을 쌓아가시길 바라며 포텐님들의 플레이 그라운드로 마음껏 누리길 바랄게요.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5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29일 21:30)에 만나요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어 간직한 빛바랜 책 중에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가 있어요. 이사를 다니면서도 23년째 책장의 한 구석을 지킨 터줏대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일찍이 수학 과학에 흥미를 잃어 문송이가 된 전형적인 케이스인데요. 생물학이 학문이 아닌 인간 본연을 알아가는 기초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은희 작가님의 신작을 접하고 얼른 알리고 싶어 얼마나 근질근질 했는지 몰라요. 책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올 초 극장에서 너무 보고 싶어 서울에서 심야 상영이 끝나자마자 막차까지 질주하게 만들었던 영화 <서브스턴스>와 함께 이야기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엄마 생물학>의 부제인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문장 그대로의 의미 뿐만 아니라, 모든 장면이 강강강!!!을 외치는 바다 호러 장르로 불리는 <서브스턴스>에서 저는 두 주인공의 관계를 엄마와 자식으로 대입해서 보았거든요. 그건 제가 저와 아이를 의도적으로 분리하려는 대전제에서 비롯됩니다.

1. 내 피와 살로 만들었지만 너는 내 소유물이 아니다.

2. 앞으로의 네 인생이 오롯이 네 것이 되려면 나의 현재를 지켜야 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을 선언할 때 각자의 날개를 달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불어 자식을 키우면서 '끔찍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버려서 나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일곱살이 되면 열살이 되면 이만큼 예쁘지 않겠지! 라는 예상은 웬걸. 반백살이 되어도 엄마 눈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기겠구나. 매번 경험은 예상을 넘어섭니다. 하나의 모체에서 시작되었으나 완벽하게 다른 두 사람이라는 점에서 세 아이의 엄마인 이은희 작가님의 경험과 영화 속 가상의 캐릭터인 엘리자베스와 수의 관계를 교차하면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신청 안내는 포포포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할게요. 

1개에 10유로, 18,000원이다. 이제 이런 환율계산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아마 커피를 먹고자 했다면, 레몬 소르베를 아이들에게 양보했어야 했을거다. 눈을 찡그리게 되는 신맛, 시원하고 부드러운 레몬맛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투어 차량을 타고 구경하는 차창밖엔 레몬나무들이 있었다. 해충을 막기위해선지 나무는 모기장하우스 같은 곳에서 자라고 있었고, 그 안엔 노랗고 탐스러운 레몬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샛파란 하늘과, 에메랄드색 바다, 그리고 해안가 절벽아래 따개비처럼 있는 알록달록한 주택들, 레몬의 싱그러운 색감. 지중해를 떠올리면 뭉게뭉게 떠오르던 색감이 모두 여기에 있었다. 축복의 땅이 아닌가 싶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레몬들, 밝고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 포지타노에 도착해서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상점과 도자기를 구경하며 보냈다. 짧은 시간 동안 머무를 수 밖에 없었지만, 거기서 본 아름다운 돌길과 해변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낭만적인 풍경 아래서 안타깝게도 나는 구역감에 온 장기가 튀틀렸고, 구불구불한 길을 승합차를 타고 나의 달팽이관의 기능을 시험하는 길에서 그렇게 멀미를 했다. 차에서 내려선 레몬에이드, 레몬소르베 뭐든 상큼한 것들을 찾아다녔고 덕분에 아이들은 더운 이탈리아 날씨에 레몬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었다. 

흑백 화면 중앙에 고풍스러운 서체로 'The End'라는 글자가 등장하며 과감하게 끝을 맺는 영화. 엔딩 크레디트는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거대 자본의 든든한 반석 위에서 스펙터클의 성을 올렸던 1960년 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영화가 소리도, 색깔도 없는 화면만으로 존재하던 때에는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 오프닝 크레디트에 제작, 배우, 감독과 몇몇 주요 스태프의 이름만 올리곤 했다. 점차 오프닝 크레디트에 넣어야 할 이름이 많아지자 영화 초반 몰입이 어려워지니 점차 엔딩 크레디트로 이행을 하게 된 거다. 고전 영화에는 엔딩 크레디트가 없으니 영화 본편이 끝나면 정말 끝이다. 마치 앙코르곡이 없는 공연처럼 어색하지만 꽤 개운한 맛도 있다.

문득 내 삶의 끝에 흐를 엔딩 크레디트엔 과연 누구의 이름이 몇이나 오르게 될까 궁금하다. 인생의 오프닝 크레디트엔 고작해야 엄마, 아빠, 조금 더 쓰자면 조부모님까지 종교를 가졌다면 감히 신의 이름을 넣을 수도 있겠다만, 엔딩 크레디트이라면 어떨까.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어느 해 5월, 엄마의 생일날에 친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중국에서 일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평온히 눈을 감으셨다. 마지막 순간, 나를 찾으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는 내게 따뜻하고 애교 많은 분이었다. 수수께끼를 내주시고, 손가락으로 산수를 가르쳐 주셨다. 집 앞 산에 함께 오르기도 했고, 참게장을 어떻게 씹어 먹는지 알려 주신 것도 할아버지였다. “하나님이나 예수님 말고, 할아버지는 뭘 믿어?”라는 질문에, 조상님을 믿는다고 조용히 대답해 주셨던 그 순간이 또렷하다. 어쩌면 내게 처음으로 사랑을 보여 준 성인 남성이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 관계는 날씨와 같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때로는 환하게 갠다. 그 안에서 나 역시 사랑을 주고받았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5월이 되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번 5월에는, 나는 한국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