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되어도 너는 내 아가 

<폭싹 속았수다> 보면서 오열하신 분 많으실 거예요.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깨달음이 모두를 눈물바다로 입수시킨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6시가 되면 무어라도 아이의 저녁상을 차려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부엌으로 향하는데요. 좋아하지 않는 데 늘 턱이 있나요. 좀처럼 늘지도 제법 그럴 듯 해보이지도 않는 초라한 저녁 밥상을 차리며 전 이 똥 손 유전자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엄마밥'을 떠올렸을 때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팬케이크를 꼽아 왔거든요. 엄마는 좋아서 요리 프로그램을 애청하는 줄 알았는데 생존 스킬을 연마하기 위해 <편스토랑>을 찾아보는 절 돌아보면서 '이제서야' 알게 됩니다.

자식 입에 뭐라도 하나 더 넣고 싶어서. 좋은 것만 먹이고 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인생의 경험치가 하나둘 그렇게 쌓여갑니다. "집에서 밥 먹고 갈거야?" 물어보는 속내에는 부러 압력속에 새밥물을 올리고 자식이 좋아하는 반찬 한 두개 정도는 상비약처럼 냉장고에 쟁여두고 보는. 케찹은 살 찐다면서 계란 후라이에 얹어 주는. 상대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모를 속마음을 아주 뒤늦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라 미안하고. 툴툴 대는 자식이 미우면서도 또 미안하고.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가 되고서야 당연하게 받았던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됩니다. 백발이 되어도 너는, 나는, 우리는 누군가의 영원한 아기일 테니까요. 

💜질문이 있는 일상, 순간에서 발견하는 영화 

질문하는 사람, 질문하는 걸 좋아합니다. 표면장력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순간이 때로는 집채만한 해일보다 더 큰 울림이 있으니까요. 오늘 뭐 먹지? 집까지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사소한 선택의 연속이 쌓여 삶을 구성합니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이 없으면 그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고 부질 없다는 생각의 덫에 빠지기 쉬운데요. 3년 안에 자가마련 같은 원대한 목표 말고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방향추를 다잡는 것. 나에게 질문하는 건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번주 금요일로 다가 온 'Editor's favorite club' 민영님의 세션을 준비하면서 우린 이런 대화를 나누었어요. '정원이 딸린 프랑스에서 육아와 영화 이야기라는 단어들이 딴 세상 같아 보이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바쁜 엄마들에게 5분 완성 집밥 같은 클래스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프랑스, 정원, 영화. 이런 키워드만 보고 떠오르는 환상 속의 이미지. 분명 실재합니다. 그러나 일상이 어디 화초같던가요. 돌아서면 밥, 집안일, 아이들 케어. 절대적인 노동과 시간으로 하루가 팍팍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주변에서 쏟아내는 질문 세례에 기가 빨려 정작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법을 잊게 됩니다. 쓰지 않는 감각은 퇴화하니까요. 그러나 남의 질문에 휩쓸리지 않게 만드는 내 안의 Why가 나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 질문을 만드는 건 '나'에서 출발하니까요. 챗 gpt에 환호하다가 기대와는 겉도는 답에 실망하는 것처럼 정곡을 찌르는 질문과 장면은 모두 동일하지 않아요.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 장면을 가져온 것도 나를 돌아보는 감각을 되살리기 위함인데요. 심야의 침실에서 모자처럼 보이는 둘의 대화에 등장하는 '아줌마'라는 호칭으로부터 호기심 버튼이 켜집니다. 어떤 상황일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결국 타인의 이야기를 빌어 내 안을 들여보고 어디가 곪았는지 어디가 멍이 들었는지 살펴보는, 글쓰기를 통한 자가치유를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비단 이 클래스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마음의 방을 기꺼이 연다는 용기. 비난받지 않을까 움츠러들었던 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공감과 응원을 받는 그 연대기가 에디터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이 편지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도 따뜻한 밥 한 술 얹어주세요.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꼭 필요한 돌봄이니까요.

아이를 독립시키는 것만 슬퍼할 일이 아니라, 나도 이제는 온전히 아이만을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고 종종 소홀했던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야 하는 시간이다. 아이가 점점 사회적인 자아를 찾아가듯이, 나도 이 행복하고 꿈결 같았던 시간들을 마음 깊숙한 곳에 든든한 내 하나의 자부심으로 묻어두고 소홀했던 내 사람들에게, 특히나 가장 소홀했던 내 자신에게 재충전의 시간이 왔다고.

친구와 눈물 섞은 대화를 하면서, 나는 이제야 친구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친구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도.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좀 더 홀가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슬쩍 내 뒷모습도 한번 거울에 비춰본다. 슬쩍 출근하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내게서 멀어지는 아이의 등을 보며 응원한다.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 나름 자신의 목은 해 나아가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것. 한국에서 아이를 출산했을 때와 지금 내 육아의 모토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떻게 키우냐가 환경에 의해 바뀌었을 뿐이다.

예전에 본 책에서나 존재할 법한 ‘쿨한’ 프랑스의 육아는 진정 실체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아이의 삶뿐 아닌 엄마의 삶 또한 존중받는 느낌이 강하다. 엄마의 약간의 무관심이 자칫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잘 자라나고 이로 인해 오히려 독립적이고 자립심 있는 아이로 성장한다. 또한 이 사회에서는 애정을 담아 모두 함께 아이들을 포용한다. 아이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몰론 정해진 학습도 개을리 해서도 안되지만 아이가 놀 수 있는 시간 또한 충분히 만들어 준다. ‘느리게 커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프랑스 엄마들. 엄마도 웃고 아이도 웃을 수 있는 모두가 속 편한 육아가 바로 이곳 프랑스의 육아법이다.

일이 바쁘고 쉴 틈이 없어도 아기가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버틴다. 내가 평생 헤어나지 못할 늪에 스스로 들어섰구나 발을 동동 구르며 1분 1초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신생아 시기와는 다른 의미에서다. 내가 시간과 관심을 쏟는 만큼 아기의 웃음을 마주할 수 있으니, 몸이 힘들어도 밤늦은 시간까지 일에 붙들려 있다 하더라도 버틴다. 육아도 일도 포기할 수 없으니 버틴다.

버티는 비결이 따로 있겠는가. 관식의 말처럼 내가 조금 더 고생을 하면 훗날 아기는 덜 고생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버티는 거다.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그러니 엄마는 지금도 우리 집에 올 때면 반찬 몇 가지라도 해와야 마음이 든든하고, 그러지 못하면 공연히 미안해하는 거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지만 그저 내 아기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오늘도 나는 버티는 힘을 익히고, 이해하는 마음을 배웠다.

나는 소녀 같은, 혹은 소년 같은 모습 없이 자라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니 나의 소년소녀 같은 모습을 꺼내 보여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장녀라 '누나니까...'라는 말을 종종 듣고 자랐다. 아이 같은 모습보다는 누나의 역할을 해야 했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가끔 마음 놓고 내 아이와 함께 아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경험들을 육아를 통해 자유롭게 펼쳐 보이며 나에게 솔직해진다. 그리고 나에게 더욱 가까워진다.

어떤 면에서 아이는 나보다 강인하고 총명하다. 나는 그 점을 나와 내 파트너에게 상기시키며 생활한다. 우리에게 육아란 그저 길안내 지도를 그려 주는 일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몸을 가진 생명체를 믿는 연습을 한다.

아이의 날개가 자라 우리를 떠날 때까지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함께 자라난다. 지루한 일상과 폭죽 같은 행복을 모두 축복하며.

오롯이 나를 위해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고요를 택한다. 노트북 화면에 반사된 아이의 얼굴을 이따금 확인하면서 나의 지금을 돌아보는 시간. 그 어떤 외부의 개입도 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적막을 흔든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헤치며 나를 복기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바스러진 껍데기만 남았을지도. 처방전 속 이름 모를 알약을 밀어 넣으며 신경 세포를 누르는 데 익숙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요령 없는 사람이나 다행히도 구르고 터지는 맷집만 자랐다. 글에 빚진 인생이라 죽도록 도망가고 싶었던 글쓰기가 나를 살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체감하며 ‘자 오늘의 똥통에 들어가 볼까?’ 다이빙을 준비한다. 빌런 플레이 리스트를 전투복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