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높은 긍정의 끝판은 바로 응원!

구석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처럼 샅샅이 자투리 시간까지 아끼고 아껴 썼는데 늘 시간에 허덕입니다. 주말로 미뤄둔 일들은 밀린 잠 빚과 집안일 플러스 변수로 고스란히 다음주로 넘어오고 월화수목금 주중 내내 월요병에 시달립니다. 오늘이 며칠이었는지 기억이 안나고 핸드폰을 찾다 찾다 냉장고를 열어보는 지경인데요. 과부화에 걸려있는 엄마의 삶엔 긍정 한 스푼 들어 갈 틈이 없어 보입니다. 

"엄마 저건 왜 저래? 왜 그런 색이야? 왜왜왜?"로 이어지는 아이의 질문과 "그렇게까지 하면서 꼭 해야 돼?"라는 세상의 질문. 질문 샤워로 도배된 일상에서 뱅글뱅글 돌다 찌개가 끓는 동안 잠시 부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 게 낛이랄까요. 그런 일상에 변화를 불어 넣어주는 건 앞장 서 그 길을 걸어 본 이의 등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포포포 9호를 만들면서도 계속 꺼내보았던 올리부님의 문장에 기대어. 또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던 지난 토요일엔 눈물버튼을 피하려 발을 떠올렸어요. 맨발로 행사장을 누비며 슬라이드를 점검하던 올리부님의 발. 1부 토크를 마치고 1열에 착석한 팀 리솔츠의 발. 그렇게 서로의 눈물 버튼을 열고 마음을 모아 응원을 퍼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내가 하고 싶었던 또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질문을 꺼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인생 어휘 사전에서 ‘성과’나 ‘업적’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대신 ‘기여’나 ‘공헌’이라는 단어를 넣는다면 비즈니스와 커리어 양쪽에서 가장 멋진 결과를 얻을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메시지를 통해 돌이켜 보면 여성 특유의 리더십에는 ‘공감’과 ‘이타심’이 있었습니다.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폄훼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도 먼저 살피고 이끌어 준 선배들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지면을 내어주고 자리를 마련해 준 이들 덕분에 여성, 엄마, 지역이라는 키워드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어요. 응원과 지지를 자양분 삼아 서로 연대해 성장하고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는 근육이 붙었습니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를 기반으로 구축해 온 안전지대는 생존과 직결되는 영역이었습니다. 훗날 은혜 갚은 까치로 자라면 어디에 박씨를 물어다 줘야 할까. 감사의 뜻을 표할 때면 이런 미션이 돌아왔습니다. 내가 받은 도움을 뒤에 올 누군가에게 대신 돌려줄 것. 이렇게 받은 마음을 화폐로 환산하면 과연 얼마를 환원해야 할까. 그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그동안 내가 차곡차곡 적립한 경험을 봉침 삼아 누군가의 막힌 혈을 뚫어주겠노라 다짐이 차곡차곡 쌓여만 갑니다. 그렇게 지역과 경계를 넘은 시스터 후드는 끝나지 않을 거예요. 옴니버스 영화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갈 테니까요.💜 

💜3월의 에디터 민영님의 에포크  

Q.영화 리뷰가 아닌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글감을 제공해주시는데요. 어떻게 글감을 발굴하시나요?

아주 오래전부터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와닿은 장면이나 대사를 저장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거나 필사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죠. 일부러 글감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자료를 찾기보다는, 그동안 저장해둔 장면이나 대사 중에서 글쓰기 모임 참가자분들이 흥미롭게 생각하실 만한 것들을 찾아 글감으로 제시합니다. 장면 저장이 어려운 경우 그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영화 속 역할을 생각해 보고 키워드로 바꿔 제시해 드리곤 해요.보통 글감은 세 가지로 분류되어요. 영화 속 대사, 대사가 없는 장면, 그리고 하나의 영화에서 찾은 네 가지 키워드입니다.

질문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내 안의 질문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초대합니다. 

3월 에포크 세션에서 제시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생각나는 것들을 자유롭게 적는 글쓰기 세션으로 준비했어요. 에세이, 소설, 시, 칼럼 등 장르는 관계없이 무엇이든 좋아요!

영상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물을 생각의 씨앗으로 해서 생각을 키워볼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보고 느껴지는 감정이나 분위기, 혹은 인물 간의 관계, 그들의 몸짓 등을 생각의 씨앗으로 삼아보는 시간으로 초대합니다. 28일 금요일 밤에 만나요!💜 

“너 또 큰 것 같아!”

소파에 기대 누운 아이에게서 어린이의 얼굴보다 머지않아 마주할 청년의 얼굴이 엿보이는 요즘, 나는 더 이상 우리의 관계를 불안해하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자랐다. 언제 버려질지 몰라 불안해하던 내 안의 아이가 이제는 온전한 제 집을 찾았다는 것을 느낀다. 남편 그리고 아이와 부대끼며 아내와 엄마로 살아온 지난 십여 년은 우리의 관계가 결코 유리처럼 약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가끔씩 다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듯 화해했다. 때때로 격하게 다툰 날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뒤 서로를 더 꽉 껴안아줄 수 있었다. 서로의 시간이 엮여들어가는 관계의 실은, 알고 보니 매끄럽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부러진 뼈가 더 두꺼워지듯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하기 위해 나눈 대화의 양만큼 우리의 관계도 두터워졌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우리를 엮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세상에도 두려워 먼저 놓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

할머니, 저를 어디다 쓰실 건가요?

저를 쓸 거면 연필로 써주세요.

지우개로 깨끗이 지울 수 있게요.

어디다 쓸 지도 모르던 말간 얼굴의 천방지축이던 그 여자애는 지금은 누리끼리한 얼굴의 청춘을 지난 엄마가 되어 열심히 달리고 있어요,

할머니가 질색했던 문지방도 스무 번도 넘고, 손목스냅으로 전을 뒤집다 엎어버리기도 하고,

상에는 음식물을 좀 묻힌 채로 닦다 남기고, 잔디를 열심히 뛰어다니며 공도 찬답니다.

애도 벌써 여덟 해나 키워 학교를 보냈네요.

할머니, 저를 이제 어디다 쓰실 건가요?

여자애라서, 야무지지 못해서, 참하게 생겨가지고 이래서,

장손을 뒷받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건 (연필로 써서 지웠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한 단어를 시작으로 두 단어 세 단어 문장으로 된 말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몸으로도 말로도 감정을 표현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나를 보며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씻지 못한 내 품에 안겨 냄새를 맡고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냄새는 너무 좋아.”

나는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엄마는 너에게 어떤 사람이야? ”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

내 두 눈과 마주한 아이 눈 속에서 진심을 옅보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맹목적인 믿음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아무런 편견 없이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저 예쁘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던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해 준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슬픈 짝사랑의 스토리는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이엔 없는 이야기이다. 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그에게서 받는 넘치는 사랑이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돼라 한다. 나 자신을 더 소중히 사랑해 주라고 한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주말의 명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세기의 작품들이 에워싼 슈타델에서 제일 반가운 건 소파였다. 관람객 의자에 앉아 시야가 허락하는 만큼 작품을 꾹꾹 눈에 담았다. 저녁 비행기까지 넘치는 시간을 보낼 유일한 곳이었다. 주말 관객의 파도를 피해 정처 없이 방과 방 사이를 떠다녔다. 그렇게 당도한 B1의 사진전. '아장아장' 의태어 딱 그대로인 작은 아기가 미술관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작품에 푹 빠진 엄마의 부츠를 잡고 칭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모골이 송연해졌다.

한국이었다면 순식간에 ‘맘충’이니 뭐니 비방으로 도배되었을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뇌리를 스쳤다. 아연실색해 나는 몰래 아기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작품에 몰입한 엄마와 간간이 그 작은 주먹을 쪽쪽이처럼 빨아먹으며 사지 보행 탐험 중인 아기. 유럽의 허브인 프랑크푸르트에서 – 모든 인종이 저마다의 바이러스를 실어 날랐을 이 관광 명소의 바닥을 - 그 광경은 망막에 그대로 각인되었다. 그보다 충격적인 건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