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전날 밤, 밖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폭죽 소리로 시끄러웠다. 똔뚜(딸)가 잠들고 난 뒤, 조용한 이불 속에서 따뚜(남편)와 나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 내가 물었다. 따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가족들 다같이 봄에 한국 갔던 것!”

우리 둘 다 공통적으로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봄에 처음으로 시부모님과 함께 2주간 한국에 다녀온 여행이었다. 핀란드는 아직 눈 속에 쌓여 있던 4월, 따뜻한 햇살 아래 온 가족이 벚꽃이 흩날리는 저수지 옆 산책로를 걸었던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랐다. 만개한 벚꽃이 폭설처럼 쏟아져 내리고, 똔뚜는 신난 강아지처럼 물가를 뛰어다녔다.

우간다에 온 지 7년이 지났다. 종교적 신념으로 남편과 함께 이곳에 발을 디뎠지만, 나는 여전히 이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다. 남편은 그의 자리에서 할 일을 찾아가며 의미 있는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 ICT 강의를 하고, 교사들을 가르치며 그가 가진 것을 나누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는 그저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한글학교 교사로서 해야 할 역할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때로 나에게 묻는다. 왜 가만히 있느냐고, 왜 이곳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느냐고, 현지 학교에 와서 미술이라도 가르쳐보면 안 되겠느냐고. 그들의 질문은 나를 흔들었다. 

때때로 잠을 자려고 누우면 오라는 잠 대신 생각 또 생각, 그저 생각만 찾아드는 때가 있다. 반자동으로 거듭하는 하루의 복기부터 그렇지 않아도 잔병치레가 잦은 위장이 더 벌개질 것만 같은 날 선 생각까지, 멈출 줄 모르는 생각은 이내 홍수가 된다.

무엇이든 가득 차면 넘친다. 야밤의 웹툰 스크롤로도 막을 수 없는 생각은 말을 하든 글을 쓰든 풀어내야만 한다. 십여 년간 묵혀온 말이 돌연 부모님과의 인연을 끊어내는 칼이 되어버렸듯 형체 없는 생각은 내 손을 벗어나는 순간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혼잣말을 하자니 어쩐지 미친 것 같고 매번 반려자에게 말하자니 순도 높은 대문자 T 성향의 이 남자에게 역할 이상의 짐을 지우는 것 같아 곤란하던 어느 날, 대학교 선배의 소개를 받아 전문 상담가를 찾았다.

살고 싶어서 왔어요.

남편은 때때로 어떤 주에는 매일 늦었다. 딱히 무슨 방황을 한 것도 아니고, 야근이나 회식이었다. 한 번은 늦게 들어온 남편을 붙잡고 울며불며 얘기한 적이 있다.

“이렇게 매일 늦지마. 나도 일하고 들어와서 하루 종일 아이케어하고, 이렇게 사는 거 너무 힘들어.”

격렬하게 울부짖은 건 아니었고 이모저모 얘기하다 보니,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앞으로의 나날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나 남편은 이제 더 이상 나의 눈물에 반응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잖아. 월급쟁이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 안 그럼 우리 카드값이 얼마 나오는 줄 알아?”

나라는 월급쟁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남편의 새벽 출근이나 야근에 더 이상 애잔하게 반응하지 않게 된 지가 꽤나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현실의 최종 진화형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10살 무렵 부모님이 이혼했다.

여름의 끝, 가을의 문턱 그 중간 어느 날. 그리 나쁜 하루는 아니었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열대야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는데 이제 제법 시원해진 날씨 덕에 오랜만에 잠을 깊이 잘 생각으로 기분 좋게 집에 들어온 참이었다. 모처럼 일찍 귀가한 아빠와 함께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계획한 꿀잠을 위해 샤워를 마친 뒤 욕실에서 막 나왔을 때 안방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안방 문을 조심스레 열어 보니 집에 오면 늘 하얀색 민소매 티에 사각팬티만 입고 있던 아빠가 멋들어진 정장으로 갈아입고 큰 보스턴백과 보자기에 옷가지를 쑤셔 넣으며 화를 내고 있었다. 엄마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런 아빠를 지켜볼 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고 상황 파악을 할 세 없이 아빠는 그날 저녁 그렇게 집을 나가 버렸다. 아빠의 회색 자동차가 세워져 있어야 할 자리는 금세 다른 자동차가 주차되었지만, 그날 밤 나는 혹시나 다시 올지도 모르는 아빠의 회색 자동차를 기다리며 밤새 내 방 창가를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아빠의 차는 그 뒤로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겪는 이별,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져 겪는 이별 둘 중 어느 것이 더 슬플까?

몬드리안 하면 빨강, 노랑, 파랑 네모가 있는 딱딱한 추상화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예요. 여느 화가들이 그렇듯 그 역시 줄곧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가 순수한 원색을 사용하여 예술계에 파장을 몰고 온 야수파의 대표인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영향을 받아 그림을 단순화하는 실험을 계속해서 이어갑니다.

나무의 기둥과 가지들, 잎사귀로 가득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에서 다음 그림으로 계속해서 나아갈수록 점차 구체적인 표현들이 사라지고 단순화되어 결국 작은 선으로만 남게 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안온한 성을 박차고 나와야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빛이 산란하는 과정을 보며 삶의 찬란함을 비로소 마주하는 것처럼. 내 이름, 직업 '나'를 수식하던 이름에서 온갖 의미로 퉁친 '엄마'로 불리면서 매일 내 안의 껍질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뭐랄까. 액체 상태의 무언가를 희미하게 지탱하는 얇은 내막 하나만 달랑 남은 맨 몸으로 시베리아 벌판을 횡단하는 기분. 그럼에도 너라는 중심추를 안고 있어 묵직하고 따뜻했다. 천적으로부터 고스란히 노출된 허허벌판에 서자 모든 시야가 또렷해졌다. 지켜내야 할 존재가 있다는 건 삶의 이유가 귀속된다는 뜻이었다.

행복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는 건강한 몸과 마음, 안정적인 인간관계, 적당한 돈, 그리고 삶의 의미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특별한 해독주스 레시피를 소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