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란 무엇인가_프랑스에서 강민영

엄마. 이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기 전, 그리고 첫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간, 나는 ‘엄마’라는 말을 미디어에서 배운 대로 정의했다. 드라마, 영화, 뉴스나 책에서 본 엄마들은 희생, 조건 없는 사랑, 마음의 안식처였다. 나는 내 엄마가 그런 존재여야 한다고 믿었다. 이따금 내게 화를 내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엄마를 보며 육아를 글로 배워서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한, 부족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내게 엄마는 희생하며 돌보는 사람이기는 했는데 거기서 기쁨을 찾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세상이 엄마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서 꾸역꾸역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차갑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희생과 돌봄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드라마가, 책이, 영화가 엄마는 그래야 한다고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첫 아이를 낳았다. 첫 만남부터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24시간의 진통 끝에 산파가 내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힘주기가 될 거고, 그래도 안 나오면 기구를 써서 아이를 꺼내자고. 나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밀어냈다. 그리고 아이가 내 몸을 빠져나와 품에 안겼다. 이때 내가 한 생각은 ‘아, 내 아기. 드디어 너를 만났구나 !’가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감동에 겨워 아이를 안지 못했다. 아이가 나온 것을 확인했을 때 내가 한 생각은,

드 디 어 끝 났 다.

나는 기대했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이게 다야? 네 첫 아이인데?

그 뒤로도 나는 아이와 데면데면했다. 한동안은 내가 나를 '엄마'라고 칭하는 것도 어색했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아이와의 관계를 몇 달간 경험하고 나서야,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예민했다. 툭하면 우는데 이유를 몰랐다. 먹고 자고 싸는 것밖에 안 한다는 신생아 시절, 병원에서 밤새 우는 아이를 안고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모른다. 병원의 간호사들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기질에 산만하기까지 한 아이를 키우며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지 못하는,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지 못하는 나를 질책했다. 차갑고 신경질적이라 생각했던 친정엄마의 모습이 내게도 그대로 나타날 때, 자괴감은 나를 꽁꽁 묶었다. 나는 우울증에 걸렸고, 몸이 말랐으며, 웃지 못하는 얼굴이 되었다. 이런 내가 싫었다. 나는 왜 세상이 말하는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것인가. 아이의 기질이니 성향이니 하는 말은 다 핑계 아닌가.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한다면 그건 결국 양육자인 내 탓 아닌가. 아이만 낳았다고 엄마는 아니지 않는가. 엄마라는 자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아이에게 무엇인가.

소용돌이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겨우 빠져나왔을 때, 나는 다섯 살, 두 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세상이 말하는 숭고한 모성애를 가진 엄마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엄마는 단지 아이를 사랑하고 강한 책임감을 가진,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엄마는 천하무적이 아니었다. 엄마는 의외로 나약하고 피곤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것을 잘 감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

내가 감정적 결핍을 가진 것에는 엄마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원망하는 마음은 옅어졌다. 대신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엄마가 왜 두통에 시달렸는지,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보며 왜 인상을 찌푸렸는지, 어째서 엄마가 신경질 부리는 날들이 있었는지. 이제는 내가 몰랐던 엄마의 시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내가 학교 간 사이에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처리하며 힘들었을 것이고, 내가 자는 사이에 아빠랑 싸워서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일 밖에 모르는 아빠가 원망스러웠을 것이고, 제 잘난 맛에 엄마에게 대드는 나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엄마가 돌봄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줬던 수많은 사랑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나를 품에 안거나,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내게 밥을 지어주고, 옷을 빨아서 단정하게 개어주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나는 아직도 큰 아이와 많이 싸운다. 소리를 지르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괴감을 갖는 대신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한다면 아이도 나처럼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라 믿는다. 엄마도 엄마의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고.

프라하에는 국제 학교와 붙어 있는 이른바, 초등학교 품은 아파트 동네가 있다. 이름은 ‘말라 사르카’라고 한다. 이 지역을 ‘디보카 사르카’라는 이름의 거대한 숲과 계곡이 감싸고 있다. ‘말라 사르카’는 숲과 국제학교 사이에 있는 미국식 마을이다. 미국식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라, 이 마을에 진입하면 마치 미국의 주택단지에 온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을은 매년 핼러윈 데이의 명소가 되었고 한다. 보통 체코 주택과 다르게 미국식 주택이라 담장이 없고 오직 대문이 있다. 그래서 문을 두들기고, 곧장 집주인을 만날 수 있는 구조라서 그런가 싶다. 꼭 이 동네 사람이 아니어도, 핼러윈 데이가 되면 프라하 주민들이 이 마을에 놀러 온다. 가지각색의 분장을 하고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의 행렬에 동참하고 전체 마을은 하나의 행사장이 된다. 실제로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아니,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 마을 주민들은 핼러윈 데이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핼러윈 장식이며 호박이며 복장이며 이렇게 진심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핼러윈 시즌이 되면 미국의 한 마을처럼 변한다. 사실 체코에서는 핼러윈 데이가 체코 전통 행사는 아니라서, 미국처럼 큰 행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곳 만큼은 진심이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가을 전어, 우리 할머니가 정성 들여 차린 차례상에 올리던 사과와 배. 나에게 한국의 ‘가을 맛’이 전어와 사과, 배로 기억된다면 프랑스의 ’가을 맛‘ 은 호박으로 기억될 거 같아. 계절마다 열리는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직접 수확해 맛보는 재미가 있는 프랑스 작은 마을의 농장, 이곳은 가을이 되면 제철을 맞이하여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알록달록 다양한 색과 모양의 호박을 수확할 수 있어. 우리 가족은 매년 가을이면 이곳을 방문해 마음에 드는 호박을 신중히 고르고 골라 아이들과 함께 맛이 있는 호박수프를 만들어 먹어.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가을날, 타지살이의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이 호박수프는 내 마음의 상처를 옅어지게 해주는 최고의 명약 이자 이제는 나에게 가을이면 꼭 먹어줘야 하는 소울푸드가 되었지.나는 잠깐씩 다녀온 서너 번의 해외여행 경험이 전부인 사람이야. 세계여행을 꿈꾸기보단 안락한 내 집에 종일 뒹굴 거리기를 꿈꾸지. 갑작스럽게 프랑스로 이주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게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날 힘들게 한 게 바로 음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