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타인의 취향이라는 조용한 응원

알아버리면 돌이킬 수 없어요.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테니까요.

2024. 9. 11.

[포.포포포 1호]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 우리의 잠재성을 주목한 세계

2024.9.11 보랏빛 밤 편지

조용하지만

누구보다

뜨겁게

*응원 : 곁에서 성원함, 또는 호응하여 도와줌. 님은 어떤 응원이 떠오르나요? 왁자지껄한 운동회, 야구장의 치어리딩,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려 핏대 높이는 격렬한 긍정. 그 응원에 '조용한'이라는 형용사를 대입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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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응원이 가진 힘

"응원은 늘 조용한 것 같아요. 안 좋은 말들이 훨씬 크게 들리고 SNS든 음반이든 공연이든 문학이든 자기 작업을 공개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되는 수치심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나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믿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 피크닉 전시에서 이슬아 작가님의 인터뷰가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너 T야? J야?"처럼 쉽게 상대방을 판단하는 도구로 MBTI가 활용되는 걸 보면서 이게 아닌데 싶었거든요. 빨리빨리라는 한국식 DNA가 상대방의 특성을 성급하게 규정하려는 문화로 변질되었구나. 본질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현실의 바로미터를 발견합니다.

사실 MBTI는 지금의 심리 상태를 추론하는 테스트라 할 수 있어요. 모든 성격에 극강의 내향과 외향만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처한 상황과 심리 여러 요인을 분석하는 도구가 이렇게 활용될 줄이야. 어쩌면 그만큼 나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묵묵하지만 조용하게. 사골국처럼 진한 응원이 짧은 환호성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처럼요.

타인의 취향

벌써 네번째. '이달의 에디터를 소개합니다'라는 포포포 강민영 에디터를 소개하는 세션으로 시작한 글쓰기 모임이 네번째 시즌을 맞았어요. 여타 글쓰기 모임과는 반대로 타인의 취향은 아주 폐쇄적이고 사적인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시작 미팅 없는 마무리 미팅

서로의 글을 공유하며 쌓이는 내적 친밀감은 역설적이게도 타인이라서 허용되는 자유에서 비롯됩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타인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경험. 그건 다시는 볼 일 없을 확률 99.9%인 '생판 모르는 남'이라 가능한 고해성사일지도 몰라요. 0.1%의 확률을 뚫고 예상 외의 장소에서 다시 마주칠 확률. (물론 가능성은 있죠) 그보다 가슴 속에 묵직한 돌 하나를 꺼내 같이 물 수제비를 던지는 그런 생경한 시간이 인생의 다음 챕터를 열어줄 거라고 믿어요.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영감만 길어오는 글쓰기라니. 혹시나 영화 리뷰를 기대하고 오실지도 모르는 신입 회원들을 위해 당부 섞인 안내를 제일 먼저 드리는 이유죠. 글로만 상상하던 멤버를 마무리 미팅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무던한 일상을 나눕니다. 근래 봤던 제일 재밌는 영화가 단골 질문이에요. 넷플릭스에 올라 온 예술 영화, 화제의 드라마. 과거에 혹은 지금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가감없이 나누는 이야기는 글에 대한 소회로 이어집니다. OTT와 유튜브라는 어디에서나 접속가능하고 대부분 무료로 수만가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 구태여 시공간의 제약으로 가득한 극장을 찾으러 간 경험이 자연스러운 서로의 안전지대. 그 제약이 불러 일으키는 몰입과 환희를 안다면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일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함도 잠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사라질거라고 제일 먼저 언급되는 종이책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로 소소한 항변을 이어갑니다.

비공개 카페에서 멤버들만 공유하는 내밀한 이야기

타인의 취향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민영님께 "잠깐 쉬었다 돌아올 수도 있는데 이전에 작성한 글을 지우고 카페를 탈퇴하는 건 너무 번거롭지 않을까요?" 질문한 적 있어요. 활동이 조금만 뜸해져도, 홍보글이 아닌데도 좋은 제품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알 수 없는 여러 이유로 강퇴 당하기 일쑤인 맘카페에 대한 경험 때문에 탈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런데 민영님이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발견하게 된 건 '그런 장치가 오히려 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어요.

곰팡이가 유익균이 되기까지

그래서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 '포포포 매거진'을 검색해 보면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멤버 온리 비공개 카페로 모임을 운영한 이유, 명료합니다.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도 글이라면 토해낼 수 있다는 경험. 그건 마치 장을 담그는 것과 비슷해요. 고추장, 된장, 간장. 발효 과정에 생기는 곰팡이는 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을 거쳐 비로소 유익균이 우러나는 발효의 시간이 글을 글쓰는 나를 숙성시킵니다.

꾸준히 글을 쓰는 멤버들에게 이 글쓰기 모임은 어떤 의미가 되어 갈까. 보이지 않는 응원으로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흩날리기 쉬운 일상의 순간을 채집해 기록하는 것. 나를 드러내고 홍보하기 위한, 돈이 되는 글쓰기라는 트렌드에 역행합니다. 다분히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이 글쓰기의 대상은 외부로 보여지는 나가 아닌 내가 찾고 싶은 나 자신이니까요. 유명해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마력이 궁금하다면 환영입니다. 하지만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조용하지만 누구보다 묵직한, 타오르지 않아도 오래 온기를 품고 서로의 자리를 덥혀주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일상에 어떤 힘이 되는지 알아버리면 돌이킬 수 없어요.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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