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왜 일하는가?
서울국제도서전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냐 염려해주시는 분들께 근황을 전하자면,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며 다른 지역을 오가는 일상으로 잘 복귀했어요. 어제는 새벽 1시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마지막 심야버스를 탔는데요.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헨젤과 그레텔 속>의 과자 부스러기처럼 구석구석 널브러진 빨래들을 주섬주섬 모아 세탁기로 향합니다. 입고 있던 옷까지 빨래를 돌리고, 아이 가방을 챙기며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면 두 시간은 훌쩍 지나있는데요. 샤워를 마치고 곤히 잠든 아이를 구경하다 한 시간쯤 눈을 붙이고 등굣길에 나섭니다. 아이가 일찍 하교하는 날에 분식점 데이트와 문구점 쇼핑도 일상의 소소한 기쁨인데요. 이번 레터를 쓰면서 오늘 아침에 택배 포장을 하며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의 문구가 유독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가혹한 운명으로 온통 뒤덮일 것만 같던 내 인생을 단 한 가지 계기로 단박에 새로이 변화시켰다. 생각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모든 걱정과 불안이 말끔히 씻긴 듯 사라졌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전념하자. 살기 위한 길은 오직 그뿐이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고난과 좌절 쪽으로 밖에 돌아가지 않았던 내 인생의 톱니바퀴가 좋은 방향으로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내 삶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지고 희망이 넘치는 나날로 바뀌어 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왜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마지못해 일을 하며 상처받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자신을 비하하고 그 때문에 좌절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일하는 것은 우리 삶에 닥쳐오는 시련을 이겨내고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러니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더 자신이 맡은 일에 사력을 다해 전념하라고 말이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능하다면 무아지경에 빠질 때까지 몰입해 보라.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와도 당당히 맞서 부딪혀 보라. 그러면 분명 자신을 옭아매던 고난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도 하지 못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지어낸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다. 90 인생 동안 직접 경험했고 영세한 기업이던 교세라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낸 비결이다. ”

서울에 갈 때는 기차를 포항으로 돌아올 때는 심야 고속버스를 탑니다. 이동 시간의 틈새를 활용해 일하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차 멀미가 심해 버스에서는 기절하거든요. 작년엔 주중 이삼일은 경산, 대구, 서울 등 거의 매일 다른 지역을 오가며 거의 모든 교통수단을 섭렵했어요. 대구의 위성도시이기도 한 경산을 매주 오간 이유는 청년창업사관학교 수료에 필수 요소인 출석과 교육 참석 때문인데요. 최대 1억가량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 초기창업패키지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정부지원사업이지만 역시 세상에 쉬운 것도 공짜도 없다는 건 진리! 중간 평가에 따라 달라지는 후속 지원금, 보고서와 평가, 매달의 실적 보고, 교육 수료 등. 매일의 허들을 숨 가쁘게 넘었습니다. 보고서 한 장당 지원금 만 원인 셈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새벽마다 뜬눈으로 각종 서류 작업을 하다 보니 밤새는 데 이력이 붙었습니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 수준의 비즈니스 아이템을 실현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한다는 건 분명 엄청난 메리트니까요. 지원 금액의  20~30%는 자부담, 부가세 10%를 더하면 사실상 지원받는 금액 이상을 자부담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표의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바꾸는 투자라 볼 수 있어요. 

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 지인들, 잘 모르는 이들까지 포함해서요. 그래서일까요.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신작 제목을 보면서 뜨끔했습니다. 최선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거든요. 차선이 될지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모토로 살면서 과연 잘하고 있나 라는 걱정과 두려움에 잠식당하는 순간이면 겁이 납니다. 이러다 도로에서 객사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타임스탬프로 탑승 전에 이동 수단을 찍는 습관이 생겼어요. 집에서 엄마를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면 저승사자를 속여서라도 반드시 이승에 머물러야 하니까요. 

계획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도 비용도 배로 들어가는 건 기본값이 되었어요. 정부지원사업으로 지원금을 받더라도 그만큼의 회사 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어요. 청년창업사관학교 덕분에 다행히 바라다 드림이라는 생활습관 형성 플랫폼의 초기 씨드머니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요. 나머지 비용을 수혈하기 위해 바지런히 외주를 뛰면서 메꾸는 건 비단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대표님들과 만나면 어떤 대출이 제일 이율이 높은지, 본의 아니게 빚 배틀이 펼쳐지는 게 위로가 된달까요. 

당장 수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면서 현재의 리스크를 감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매일 고민합니다.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일까 싶지만 명확한 건 함께 만들어 온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도록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었어요. ‘왜 이 일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본질을 들여봅니다. 포포포라는 매거진도 바라다드림이라는 생활습관 플랫폼도 엄마가 된 여성들의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기를, 계속해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꿈꾸는 존재로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미션에 함께한 이들 덕분에 가능했어요. 달리운동장, 디에이블, 테이크루트, 포포포. 이 네 팀이 모여 작년 여름 아이들의 기록, 운동, 수면 습관을 잡아주고 (일찍 자는 패턴을 만들어) 엄마들이 밤에 웨비나에 접속할 수 있도록 Miracle Night Ritual 이란 프로그램을 10주 동안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프로그램에 필요한 다이어리, 앱 개발, 홈페이지 등을 비롯한 큼직한 자본의 덩이를 지원사업으로 확보해도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는 네 팀이 서로의 재능과 자원을 하나의 프로그램에 투자하기까지 수많은 관문이 존재합니다. 내부의 팀원을 설득하고 프로그램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안팎으로 챙기고, 가능성에 투자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한 IR이나 코칭 등으로 분주한 하반기를 보냈어요.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만든 이 가설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내용이라는 걸 입증하고 평가받으려 동분서주하면서도 당장의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부담감에 자신감도 체력도 많이 떨어졌던 가을을 지나 겨울이 왔습니다.

작년부터 예상은 했지만 혹독한 한파가 스타트업 씬에도 경기에도 불어닥쳤어요. 올 초부터는 테이크루트 미정님의 기획으로 바라다 글쓰기 부트캠프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매달 새로운 강사진을 섭외하고 기획해 주신 미정님 덕분에 라이팅 클럽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기획과 섭외에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가는지 아는 만큼 운영에 들어가는 부분들을 서포트하면서 하루 빨리 흑자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면서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다 보면 지금 산재한 문제들도 해결해 갈 수 있겠죠?🤣 2주에 한 번 뉴스레터를 만들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쓰는 멋진 분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더불어 이 멋진 글과 디자인의 첫 독자라는 것도 감개무량한 일이고요. 요동치는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고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된 스누트의 글쓰기 수업 시간에서 교장 선생님이 하신 말이 위로가 되었어요. "인생 뭐 있어?"라는 말을 하는 이들 중에서 분투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 온 이들은 많지 않다. 짐작하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고, 그래서 더욱 말을 아끼게 됩니다. 내가 보지 못한, 짐작하지 못한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 날 선 비판이나 공격 대신 상대의 상황에서 먼저 생각해 볼 것.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호흡의 페이스를 가다듬으며 먼저 내 폐부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습니다. 한번 뱉으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말의 힘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포포포 7호 '다양성에 대한 존중' 호에서 민주님이 로마에서 발견한 ‘친절함이라는 재능’을 일깨워준 것처럼. 기고와 인터뷰로 포포포 지면을 채워준 그로잉맘 다랑님이 “진짜로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고 자주 강조하는 것처럼. 친절과 다정이라는 내 안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공을 들입니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짤처럼 “하나님, 잠재력 대신 ‘잠’과 ‘재력’을 주세요!”라는 메시지에도 맞장구치면서요. 함께 무에서 유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수익화라는 히말라야를 넘어갈 수 있을지 더욱 골몰해 보겠습니다. 보답하고 싶은 이들의 얼굴을 매일 떠올리면서요. 2023년의 절반을 지나며 ‘자기 앞의 생’에서 지금 당장 뽑아 들 수 있는 것이 한도 없는 신용카드 같은 재력이 아니면 어떤가요. 대신 잠들어 있던 ‘다정’이와 ‘친절’이를 깨워보는 건 어떨까요? 💜

회사생활 10 년차가 넘어가자, 하하 호호 웃으면서 일하던 여자 동료들의 행보가 각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행보가 달라졌다는 것은 인생의 우선 순위가 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내 인생의 나, 나의 일보다는 가족, 육아의 포지션이 커져 간다는 의미였다. 그 중 한 선배에게 나는 이직을 추천하게 되었고 돌아온 대답에서 ‘우리(워킹맘)’의 처지를 깨달으며 서글픈 마음을 다잡는데 하루를 온종일 썼던 기억이 난다. 

“너 좀 쉬어야 해.”

내 말에 줄리아는 갑자기 엉엉 울었다. 우는 줄리아는 처음 보았다. 늘 긍정적이고 밝은 줄리아가 우는 거면 정말 힘든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내 두꺼운 마음의 벽을 허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본능적으로 줄리아를 껴안고 괜찮아. 괜찮아. 네가 이제껏 너무 잘하려고 애써서 그래. 이제 조금 나눠서 하고 네 생각만 하는 날도 만들어보자라고 말했다.

오케이. 이번 실수의 정도는 10점 만점에 6점.

완벽이들이 어떻게든 해결해주고자 비둘기처럼 이모저모 방법을 가져다주는 사이, 덜렁이들은 서로의 바보짓을 공유하며 마음을 안정시킨다. 야, 나는 어쩌냐. 있는 줄도 몰랐어. 버린지도 오래됐는데, 어쩌면 좋지, 너만 그런거 아냐 하는 안도감을 주는 말과 그거 만약에 잃어버렸으면 대우 위니아에서 판대. 그걸로 호환시켜.라는 해결책을 주는 말들이 오간다.

‘혼자 있는 게 좋아요.’ 했던 나였다. 그러나 돌아보니 혼자 있을 때마다 책과 음악에 그리고 여럿 SNS채널 등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실제로 대면하여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눈 행위는 없었지만, 책 속의 인물들과 SNS상의 이웃 글과 사진들이 끊임없이 교제의 대상이었음을 자각하게 되면서 급격히 외로웠다. 그리고 ‘아, 나는 혼자인 게 좋지만, 홀로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구나.’하고 취향까지 새롭게 발견했다.